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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부길 목사의 사탄 발언에 대한 어느 목사님의 글

추부길 목사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하나님께서 추 목사님을 어떻게 보실까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님은 최초의 진압 현장에 계셨습니다. 님이 현장에 나타나고 얼마 안 되어 최초의 폭력진압이 일어났습니다. 그 현장을 목격하

거나 뒤 늦게 알았던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목사입니다. 언제 안수를 받았는지 또 현직을 그렇게 오래 떠나 무임으로 있으면서도 어떻게 목사직을 유지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교단마다 다르니 굳이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세상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늘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

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하물며 목사는 어때야 할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당신은 촛불집회 참여자를 '사탄‘이라고 했더군요. 졸지에 사탄이 되고 보니 가슴이 답답해 졌습니다. 여린 손에 촛불

을 들었던 수많은 학생들, 아이를 업고 부등을 태우고 나온 가족들, 퇴근 후 하이힐을 신고 나온 여성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대학생들, 이들이 모두 사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이란 단어를 쓰셨습니다. 비슷한 단어로 독사의 자식이란 말도 쓰셨군요. 독사의 자식이란 단어는 당시 율

법이 도그마가 되어 하나님의 참 말씀을 알지 못하는 유대교 지도자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쓰셨던 말씀입니다. 율법

에만 매여 있는 당시의 기득권자들에게 쓰신 말씀입니다. 당시에는 불순한 무리였던 예수님을 따르는 소외된 이들이나 병든

이들에게는 사용치 않으셨습니다. 사탄이란 단어는 베드로에게 쓰셨군요. 베드로가 가진 인간적이 생각, 예수님의 사명을 막

으려는 생각을 책망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역시 베드로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기득권자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낮은 자를 짓밟는 자들,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일부 목회자들, 이들이 하나님 보기에는 독사의 자식이 아닐까요? (전 차마 사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권력입니다. 그 권력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성경

에 빗대어 ‘아비’로 표현하셨더군요. 아비가 나쁜 것으로 먹이겠느냐고 하셨더군요. 그가 누구의 아비인지 묻고 싶습니다. 어

떤 아비가 자식들의 피맺힌 절규를 무시하고, 어떤 아비가 자식들을 방패와 군화발로 짓밟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아비가 물

대포를 동원해서 자식들을 실신시키고 곤봉으로 자식들의 뒷통수를 내리쳐 피 흘리게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예화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는 달리 이미 그 전제가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아비라면 일부를 위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나쁜 것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이 목사라면, 그들을 보듬어 안을 생각은 못하십니까?

당신이 정말 목사라면 그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물음에 당신은 사탄의 무리라는 끔찍한 말로 대답해왔습니다.

당신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당신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습니까?

당신이 진짜 목사라면 당신은 이렇게 한달이상 거리를 나서야 하는 이들을 사탄으로 매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같은 목사로서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추부길 목사님,

당신의 소설이 가공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인터넷 곳곳에 당신의 ‘놀자’ 시리즈가 멋있는 그래픽으로 만들어져 국민

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지키고 싶은 것이라면 지키십시오.

저는 오늘 또 광장으로 나갑니다.

당신의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의 눈은 끝없는 사탄으로 들어찰 것입니다.

오늘이 시작입니다.

당신의 욕심과 아집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늘 코앞에 사탄의 무리와 함께 대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군요.

지난 번 글에 썼던 마지막 문장을 오늘도 대신합니다.

“현직 목사로써 당신이나 저나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국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말입니다.